그리스 최초의 전문가 그룹 소피스트

소피스트 아고라
  1. 소피스트의 등장 소피드트라는 단어는 원래 지(知)자, 현자를 뜻했다. 즉 어떤 분야에 깊은 지식이나 지혜를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이들은 지식을 전수하고 그 대가를 받는 최초의 전문 지식인 그룹이었다. 아테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두 번이나 극적인 승리를 거둔 후 그리스 전체의 중심이 되었다. 아테네의 정치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정치,경제, 군사의 중심지뿐만 아니라 문화의 중심지가 된 아테네를 “이제 그리스를 가르치는 학교다. “라고 말했다.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가 아테네의 문화적 중심이었다면, 아고라는 아테네 민주정치의 중심이었다. 아고라는 아크로폴리스 밑에 있는 아레오파고스 언덕을 등지고 펼쳐져 있었다. 그러면 아고라는 어떤 곳인가? 그곳은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일 뿐만 아니라 ‘말’을 주고 파는 시장이기도 했다. 아고라는 고대 그리스어로 ‘시장’이라는 뜻 이외에도 ‘민회, 민회가 열리는 장소’라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관습에서 시장은 남자들이 봤다. 전쟁을 통해 확보된 수많은 노예들 덕분에 집 안에서 별로 할 일이 없었던 아테네 시민들이 자주 간 곳은 아고라였다. 아고라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말’이었다. 시장에서 흥정을 할 때도 말이 중요했지만, ‘민회’에서는 더욱 그랬다. 민회에서 정책 입안자는 나서서 시민들을 설득시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또한 반대자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무력화시켜야만 했다.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아테네의 법정에서도 말은 무척 중요했다. 당시에는 판사나 검사, 변호사라는 직업이 존재하지 않았다. 고소한 당사자가 직접 나와 고소한 이유를 밝히고 형량을 제시하기도 했고, 고소당한 피고도 직접 출두하여 스스로 변혼을 펼쳐야만 했다. 그러니 고소인이든 피고소인이든 말재주가 없으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원고와 피고에게 법전 연설문을 대신 써주는 법정 연설가들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원고나 피고가 법정 연설문을 직접 읽어야만 했다. 이렇게 아테네의 사화생활에서 말이 중요해지자 이에 부합해서 나타난 철학자들이 소피스트들이다. 소피스트들은 원래 지혜를 가진 자로, 아테네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소피스트들은 여러 가지 지식을 돈을 받고 전수했지만, 그래도 가장 수요가 많은 것은 사람을 세련되게 설득할 수 있는 말재주, 즉 웅변술이었다. 아테네에서는 출세하려고 소피스트들에게 비싼 돈을 주고 웅변술을 배웠다. 웅변술에 대한 수요는 상대방의 말을 반박하거나 상대방을 말로 제압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이 점이 소피스트들로 하여금 ‘진리’나 ‘진실’보다는 상대방을 어떻게든 이기려 하는 말기술에 치중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소피스트들에게는 궤변가라는 악명이 따라붙었다.
  2. 그리스 민주주의의 바탕이 된 말 기술자 소피스트 소피스트로 유명한 철학자는 프로타고라스와 고르기아스등이 있다. 소피스트들을 단순하게 시민들을 현혹해 말의 기술을 판 사람들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유분방하고 다양한 상대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소피스트들의 철학에는 그리스 민주주의의 분위기가 반영되어 있다. 그들은 전통적인 종교적 진리나 절대적인 도덕적 가치를 신봉하지 앟고 상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사실 소피스트들은 일종의 자유사상가이자 계몽주의자들이었다. 소피스트들에 대한 비판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들 덕택에 다양한 의견과 활발한 토론 문화가 아테네에서 꽃을 피웠고, 그렇게 해서 완전히 새로운 철학의 지평을 열렸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집요하고도 능란한  ‘말’로 소피스트들을 곤궁에 처하게 한 소크라테스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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