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크리토스(기원전 460~370년경)는 그리스 북부에 있는 압데라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이해에는 히포크라테스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데모크리토스의 아버지는 압데라의 재력가이자 유력자였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2차 페르시아 전쟁 중 그곳을 지나던 크세르크세스 왕 일행을 융숭하게 대접했을 정도라고 한다. 데모크리토스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산 100달란톤을 가지고 세상을 두루 다니며 가능한 많은 스승들을 찾아 다녔다. 100달란톤은 오늘날 돈으로 환산하면 10억 정도 되는 돈이다. 그는 돈이 수중에서 한 푼도 남지 않을 때까지 이집트와 페르시아, 홍해 등 세계각지를 여행하며 현자아 학자들을 만나 학문을 배웠다. 그도 자신의 여행에 대해 이렇게 말했을 정도다.
나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 중 가장 많은 여행을 하고, 가장 이상한 것들을 찾아 다녔으며, 셀 수 없이 많은 하늘과 땅을 보았다. 또한 학식 있는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났다. 기하학적인 도형을 그리고 이를 풀이하는 데 나를 능가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른바 토지측량 학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나를 이기지 못했다.
오랜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데모크리토스는 빈털터리였다. 압데라가 속한 트라키아의 법률에는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한 아들은 조국의 땅에 묻힐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는 죽은 다음에 바다에 버려지는 것을 피하고자 급히<자연에 관하여>라는 책을 저술했다. 그 책을 읽은 압데라 시민들은 그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 그를 위해 돈을 모으고, 죽으면 성대한 장례를 치러주기로 했다.
원자론은 최초로 주장한 철학자
원자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아톰(ATOM)’은 더이상 나누어질 수 없다는 뜻이다. 원자는 질적으로 모두 같지만 크기와 기하학적 형태, 즉 모양이 서로 다르다. 원자는 파르네니데스의 일자처럼 자를 수도 없고, 분할될 수 없으며, 꽉 차 있기에 다른 어떤 것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다. 다만 파르메니데스가 이런 일자를 하나라고 생각했다면, 데모크리토스는 이런 일자가 무수히 많다고 생각했다. 그는 파르메니데스가 운동을 부인한 것과 달리 이 원자들의 운동을 주장했다. 이 원자들이 운동할 수 있기 위해서는 허공이 필요하다. 물건으로 꽉 차 있는 방에 있다면 우리는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허공은 비어 있으며, 원자들이 끊입없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원자론에서는 세계가 생성되기 위해서는 원자들과 허공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애당초 누가 이원자들을 만들어낸 것일까? 원자들은 누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영원으로부터 존재하는 것이다. 원자들은 허공에서 운동하면서 서로 부딪히고 충돌하며, 비슷한 것들끼리 분리되면서 세계를 생성해 낸다. 데모크리토스는 이런 과정이 우연적이지 않고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원자들의 수는 무한하며 영원으로부터 존재한다고말한다. 그는 감각이나 사고, 더 나아가 영혼조차 원자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쓴맛을 느끼는 것은 작고 매쓰럽고 둥들며, 표면에 굴곡이 있는 원자들 때문이다. 짠맛은 크면서 둥글지 않은 원자들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소리를 듣는 것은 소리의 조각들, 즉 소리의 원자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데모크리토스는 영혼도 원자의 운동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럼점에서 그는 유물론의 선구자가 된다. 그에 따르면 행복한 영혼이란 영혼을 구성하는 원자들이 안정되어 큰 동요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을 뜻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혼을 구성하는 원자의 배열과 위치를 항상 좋은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에 영혼을 안정시킬 수 있는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그는 “의술은 몸의 질병을 낫게 하지만, 지혜는 영혼을 격정에서 벗어나게 한다”라고 말한다.
축제를 위해 죽음을 미룬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백 살 이상 살았다. 그의 장례는 압데라 도시의 국장으로 치러졌다 그가 죽기 전에 남긴 일화도 유명하다. 그가 죽기 얼마 전, 압데라에는 마침 여자들만으로 제사를 드리는테스모포리아 축제(데메테르 여신을 기리던 고대 그리스의 축제)가 열릴 예정이었다. 곡기를 끊고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며 침대에 누워 있던 데모크리토스에게 그의 누이가 사정했다.
‘지금 죽으면, 테스모포리아 축제에 참여할 수가 없잖아요?’
침대에 누워 있던 데모크리토스는 누이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고, 일단 죽는 것을 잠시 단념했다. 그는 누이에게 날마다 갓 구운 빵을 가져와 달라고 했다. 그는 축제가 긑날 때까지 그 빵 냄새를 맡으며, 마지막 인내심을 발휘해 생명을 유지했다. 축제가 끝날 때쯤 그가 누이에게 물었다.
‘이제 죽어도 되나?’
누이가 축제가 끝났다고 대답하자, 그는 눈을 감고 다시 뜨지 않았다. 그는 유언을 남기지 않았지만, 언젠가 삶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한적이 있었다.
“세계는 연극무대, 삶은 한 편의 연극, 그대는 와서 보고 떠나네”(DK 68 B115)
——————————– 이동희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철학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