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윤리와 의무를 강조한 스토아학파-제논

제논

철학을 선택한걸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함
엄격한 윤리와 의무만 강조해서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은 이 철학 학파는 오히려 서양 철학사에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스토아 학파는 헬레니즘 시대에서 로마 시대에까지 지속됐다.
스토아 학파는 그 시대마다 특징이 다르다. 여러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 중에서 스토아학파의 창시자는 제논이다.
제논의 아버지 므나세아스는 소아시아와 그리스를 드나드는 무역상이었다. 그는 아들의 교육에도 관심이 많아 어린 아들을 위해 철학 책을 사다주곤 했다. 제논은 거무스름한 피부를 지닌 그는 구부정하고 빼빼 마른 몸 때문에 볼품없는 외모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제논이 아테네로 오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는 보라색 염료를 싣고 아테네로 오던 중 아테네의 외항인 페레이라스 근처에서 난파를 당하게 된다. 그는 험한 바다에서 침몰해가던 배에서 다행히 목숨을 건졌으나 바다를 항해하는 일에 진절멀리가 났다. 그는 아버지의 직업에 회의를 품고 다른 길을 찾다가 우연히 책방에 들어가서 크세노폰이 쓴 (소크라테스의 회상)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책을 읽던 제논은 그만 책 속에 나오는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에 매료되고 말았다. 책에 감복한 그는 책방 주인에게 물었다.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이 있을까요’
책방 주인은 때마침 책방 앞을 지나가던 키니코스학파의 크라테스를 보게 되었다.
‘저기 저 영감을 따라가시오’
그렇게 해서 제논은 견유학파의 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었다.
내성적인 성격의 제논은 성격상 후안무치한 견유학파와는 별로 맞지 않았다. 그는 크라테스를 떠나 메가라학파의 스틸폰 문하로 갔다. 제논은 메가라학파에서 잠시 배웠지만 그곳에서도 만족을 얻지 못했다. 그는 아카데미아의 원장인 크세노크라테스에게로 가서 배우다가 그가 죽자 다시 메가라학파의 디오도로스에게 가 배웠다. 그러다가 다시 아카데미아로 돌아가 4대 원장인 폴레먼의 가르침을 받았다.
제논은 아테네에서 난파한 사건을 인생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건이라고 회상했다. 그일로 인해 철학을 배우게 되었으니까.

스토아

덕에 따라 삶을 살기를 원한 제논 
제논은 여러 선생에게 배운 뒤 독립해서 아테네의 아고라에 있는 스토아에서 사람들을 가르쳤다.  스토아는 기둥이 늘어서 있고 벽이 없는 복도를 말한다. 그가 이곳을 이용한 이유는 제논은 외국인이어서 아테네에서 땅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난해서 다른 곳을 선택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테네가 붕괴하고 난 뒤, 그의 가르침은 정신적 공황 상태에 있던 아테네 사람들의 마음을 매우 강하게 사로잡았다. 제논은 자연과 개인의 삶의 조화를 강조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은 자연이라고 불리는 체계의 한 부분일 뿐이며, 개인의 삶도 자연과 조화를 이룰 때 가장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논은 인간에게 목적은  욕망이 아니라 덕에 따른 삶을 사는 것이다. 모든 덕은 이성에 기초한다. 덕은 우리가 무엇을 참고,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덕에 따른 삶은 우리를 ‘정념의 부재’라고 하는 ‘아파테이아'(무심 무욕해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상태)로 이끌어간다. 다시 말해 고통과 쾌락에 무관심해질 때 우리는 그러한 상태에 가장 잘 도달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제논에 따르면 인간은 이렇게 감정과 욕망을 잘 다스림으로써 아파테이아뿐만 아니라 지혜에도 도달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떤 것에도 지배를 받지 않고 스스로 자유롭게 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는 죽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죽음아, 무엇 때문에 나를 부르느냐. 내가 가마!’
죽음마저도 자신의 의지로 하겠다는 제논의 생각은 뒤에 스토아주의자들에게서 그대로 나타난다. 스토아주의자들에게 자살은 금기가 아니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것처럼, 죽음도 선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철학 이야기 (이동희)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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