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빠른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경주를 하면 누가 이길까? 당연히 아킬레우스가 이길 것이다. 그런데 거북이가 한 걸음 앞서서 출발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제논(기원전490~430년경)은 문제를 제기했다. 그가 내세운 논리는 이렇다. 시간이 무한한 연속이라면, 아킬레우스는 한 걸음 앞서 달리는 거북이를 결코 앞지를 수 없다. 왜냐하면 아킬레우스가 거북을 따라잡으려면 그가 이동할 절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킬레우스가 거북이 출발한 지점에 도달했을 때, 거북이는 그 시간만큼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다시 아킬레우스가 거북이가 있는 장소에 오는 동안 절대 시간이 필요하고, 그 사이에 거북이도 앞으로 움직여 갈 것이다. 따라서 둘사이의 거리가 더욱 좁아지게 되지만 거북이르 이길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제논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날아가는 화살은 정지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시간이 매순간의 연속이고 집합이라면, 그 시간은 매순간으로 자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시간을 매순간으로 자른다면, 날아가는 화살을 매순간으로 자를 수 있을 것이다. 매순간마다 화살은 마치 영화의 필름처럼 각각의 시점에 정지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제논이 만든 역설이다.
스승을 사랑한 철학자
제논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역설적 논리를 개발한 이유가 스승 파르메니데스를 위해서 였다고 한다. 제논에게 파르메니데스는 양아버지이자 스승을 넘어 연인인 특별한 존재라고 플라톤이 말했다. 그러니 제논이 파르메니데스를 위해 역설적 논리를 펼치는 것을 어느정도 이해가는 측면이 있다.
제논은 기원전 490년경에 엘레아에서 텔레우타고라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플라톤에 따르면, 그는 파르메니데스보다 스물다섯 살 연하였다 엘레아의 정신적 지주이자 청소년들의 교육에 막강한 영향을 끼쳤던 파르메니데스가 어린 제논을 보고 곧바로 자기 집에 데려가 살 정도로 그의 재능과 성격은 남달랐던 것 같다.
제논은 ‘엘레아의 팔라메데스’라는 명성을 얻은 이유도 스승의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논리를 개발하다가 얻어진 것으로 보인다.
팔라메데스– 그는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전쟁에 나가지 않으려고 거짓으로 미친 척하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정도로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 일로 오디세우스의 원한을 사서 트로이 전쟁 중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었다. 그는 그리스 알파벳 중 여러가지 철자와 화술을 창안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가 서양 장기와 여러종류의 주사위 놀이를 고안해낸 것으로 보아, 당시 그는 글자를 짜 맞추는 퍼즐놀이 같은 것을 만들어낸 사람이였다.
‘모든 것은 하나다.’라는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많은 비웃었다.파르메니데스를 비웃는 사람들은 모든 것은 하나가 아니라 다수라는 입장을 자동적으로 취하는 셈이었다. 제논은 스승의 가르침을 옹호하기 위해 ‘다수가 존재한다.’라는 주장이 모순적인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을 모여주고자 했다. 다수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다원론자뿐만 아니라 점들의 집합이 선이라고 주장하는 피타고라스주의자들도 마찬가지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들에 따르면 결국 현실은 개멸적 사물들의 총합이 되는 세이었다. 그러나 제논은 그들의 논리가 가진 모순점을 짚어냈다. 다수가 존재한다고 할 때 제논은 서로 구분이 되는 무수한 부분들인 그 개별적인 것은 단일성과 동일성을 갖는 하나여야 하는데, 다수라고 한다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를 부정하고 다수를 주장한다면, 다수를 구성하는 개별적인 단일성과 동일성도 부정되어야 한다. 제논은 역설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 철학에서 순수한 사유의 법칙과 논리의 영역을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으로 평가된다.
혁명에 앞장선 철학자
철학자 제논은 엘레아의 폭군 네아르코스를 제거하려다 죽었다. 그는 리파라 섬에 무기를 숨겨높은 다음 밤을 틈타 엘레아에 상륙해 네아르코스를 제거하려 했다. 그렇지만 누군가 비밀을 누설하는 바람에 거사는 수포로 돌아갔고, 싸움 한 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음모의 주동자로 붙잡혔다. 네아르코스는 이 일을 함께 꾸민 사람들을 털어놓으라고 갖가지 고문을 가했다. 그러나 제논은 존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네아르코스가 입을 열라고 여러 차례 종용할 때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내가 내 혀의 지배자인 것처럼, 또한 내 영혼이 내 육체의 지배자이다.”
“말로 해서는 안 될 작자구먼. 더 고문을 가하라.”
한참 동안 제논은 심하게 고문을 당했다. 이 정도 고문이면 말할 듯 싶었는지 네아르코스가 제논에게 물었다.
“누가 무기를 리파라 섬으로 싣고 갖고 누가 공모했는지 말을 하라. 그러면 너만은 살려주겠다.”
“말하겠소”
“누군가?어서 말해보아라.”
제논은 차례차례 이름을 대기 시작했다. 그 이름을 듣던 네아르코스는 깜짝 놀랐다.
“아니, 네가 말하는 이름들은 모두 나의 측근 이름이 아닌가?”
“그렇소, 당신의 측근들 모두가 이 일에 함께 공모했소.”
네아르코스는 제논이 지신의 친한 측근들을 모두 공모자로 몰아, 자신을 고립시키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네아르코스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분을 삭이고 제논을 달래려 했다.
“나를 더 이상 놀리지 말고, 너 말고 이 거사를 일으킨 도 다른 결정적인 인물을 하나만 대보아라.”
“좋소. 굳이 원한다면 알려드리리다.”
“누구인지 어서 말해보아라.”
“이 거사를 일으키게 한 결정적인 사람이 있소.”
“그놈이 누구인가?”
“바로 국가가 저주하는 당신이ㅇ오. 당신이 없었다면 애당초 이 거사는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오.”
네아르코스는 말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제논에게 더욱 심한 고문을 가했다. 고문이 점점 더 심해지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제논이 스스로 립을 열었다.
“좋소. 그만하오. 이제 다 불겠소.”
회심의 미소를 띤 네아르코스가 거만한 몸짓을 하며 제논 앞으로 다가갔다.
“어서 불어라”
“이 비밀을 당신에게만 조용하게 알리고 싶으니 귀를 가까이 대시오.”
네아르코스가 거만하게 제논의 청에 따라 구를 가까이 댔다. 그러자 제논은 이때다 싶어 입을 벌려 그의 귀를 덥석 물었다. 가까이 있던 심복들이 재빨리 달려들어 제논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제논은 네아르코스의 귀를 더욱더 세게 물고 늘어질 뿐이었다. 결국 심복들은 철학자를 마구 칼로 찌를 수밖에 없었다. 이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 엘레아 시민들은 봉기해서 네아르코스를 몰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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