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세노파네스(기원전 565~470년경) 는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도시를 무대로 활동한 철학자이다. 그는 스승이 없으며 홀로 세상의 이치를 터득했다고 자랑하고 다녔다. 위대한 철학자를 굼꾸던 패기만만한 소년 엠페도클레스가 그런 크세노파네스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크세노파네스와 만났을 때 당돌하게 면전에다 대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어디에도 현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크세노파네스가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가 현자의 모습을 찾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지! 현자만이 현자를 알아볼 수 있는 법이니까.”
이렇게 크세노파네스 자신도 자신의 혀를 주체하지 못해, 지배층들이 사치에 몰두하는 것을 신랄하게 조롱했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 유랑 시인으로 평생 이탈리아 남의 여러 도시를 떠돌아다녔다.그러나 운동선수보다도 더 형편없는 대접을 받는 것에 대해 이런 불평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누군가가 발이 빨라서, 또는 5종 경기를 해서, 도는 레슬링을 하거나 아주 힘든 권투 기술을 가져서, 도는 판크라티온이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경기에서 승리를 획득하면, 시민들은 그를 아주 영예롭게 생각한다. 그는 경기장에서 눈에 잘 띄는 앞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국가는 그에게 공적인 비용의 식사를 줄 것이고 보물이 될 만한 선물도 줄 것이다. 심지어 말들이 승리했을 때에도 이 모든 것이 주어진다. 그러나 그는 나만큼 그러한 것을 차지할 만한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힌이나 말의 힘보다 우일의 지혜가 더 나은 것이기 때문이다(DK21B2)
고대에 유랑 시인들은 단순한 가수나 시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지난간 과거를 노래해주는 역사가이자 그 속에 든 교훈을 전달해주는 기혜의 전승자였다. 그러나 크세노파네스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노래에 풍자와 지혜를 담았다. 그는 불합리한 것을 꼬집고 뒤틀어 조롱하는 풍자 시인이었다.
엘레아 학파의 시조
크세노파네스는 기원전 565년경에 콜로폰에서 태어났다. 콜로폰은 지금의 터키 서부 해안에 연해 있는 이오니아 지방에 있다.
대부분의 철학사를 보면, 크세노파네스는 엘레아학파의 시조로 설명된다. 그가 엘에아학파의 시조라는 견해는 원래 플라톤에게서 비롯한다. 플라톤은 <소피스트>편에서 크세노파네스를 엘레아 철학의 창시자로 간주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인 플라토의 견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형이상학>에서 크세노파네스가 파르메니데스의 선생이었다고 못 박고 있다. 크세노파네스가 파르메니데스보다 앞서서 ‘모든 것은 일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상을 견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크세노파네스가 엘레아학파의 시조라는 것에 대해서 오늘날에는 여러사람이 의문을 제기한다.
합리적 신(神)관을 견지한 철학자
크세노파네스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은 비판적 종교학자로서의 모습이다. 서양 철학사에서 종교에 대해 처음으로 비판적 반성을 가한 사람이 그이기 때문이다.당시 그리스인들이 믿고 있던,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가 그려낸 신의 모습에 대해 신랄한 비판과 풍자를 가했다. 그들이 그려낸 그리스 신들은 한마디로 말해서 사기꾼이거나 난봉꾼이라는 것이었다. 다음은 그들이 노래하는 신들이 갖고 잇는 인간적인 모습에 대해 크세노파네스가 한 말이다.
“만일 소와 말, 그리고 사자가 손을 가졌거나, 그들이 손을 가지고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인간들이 하는 일을 행할 수 잇다면, 말은 신의 모습이 자신들을 닮도록, 소는 소의 모습으로, 그리고 신들의 몸을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형태에 따라서 만들었을 것이다.(DK 21 B15)”
하지만 크세노파네스가 이렇게 전통적인 그리스 신들을 비판한 것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무신론자가 아니었다. 우리 인간의 기준에 맞추어 고안된 ‘신’에 대해서는 반대했지만, ‘신’을 인정했다.
그는 철저하게 합리적 신관을 견지한 인물이었다. 그럼 그는 어떤 ‘신’을 말한걸까?
그가 주장한 신을 유일신이다. 최고, 최선의 신은 오직 하나가 있을 뿐이다. 이 신은 유한한 존재가 아니라 무한한 존재이다. 따라서 유한한 인간의 모습을 지니고 있을 수가 없다. 또한 사고도 무한하여 인간적인 사고와 비길 수 없는 그러한 존재이다.
“신들과 인간들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하나의 신은 형체도 생각도 인간들과 조금도 비슷하지 않다”(DK21 B23)
크세노파네스의 신은 생성과 소멸이 없는 우주 전체와 같은 것이다.일종의 범신론적인 성격을 띤 신이다. 태양도 신이 아니라 작은 불 조각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나름대로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말들은 태양을 신으로서 철석같이 믿고 숭배하던 사람들에게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을 것이다. 당시 상황으로는 가히 혁명적인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