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한 재미있는 3가지 이야기

1.인간이라는 덧없는 존재 권력이나 세속에 아무런 욕심이 없었던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란에서부터 이집트, 소아시아 지역까지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던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이 소아시아 지역에 사는 괴팍하지만 유명한 헤라클레이토스를 초대하고자 초대장을 보냈다고 한다. “그대에게 그리스의 지혜를 듣기 원하오. 자연데 관한 그대의 저 작은 세계에 대한 대담한 이론을 담고 있으면서도 이해하기 참으로 어려운 애매한 구절이 많으니, 직접 와서 나에게 설명해주어 빛을 밝혀주기 바라오.” 초대에 응하면 엄청난 보화와 안정된 지위가 따를 수 있는 기회였다.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답신을 보낸다. ” 인간이라는 덧없는 존재는 진리나 정의와는 거리가 멀게 산다. 인간은 자신의 고질적인 무분별함 때문에 지나치게 허영에 찬 생각만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체의 악과 나를 따라다니는 과욕이나 높은 지위에 앉고자 하는 허세도 모두 버렸으니 페르시아에 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소박한 것에 만족하며 내 뜻대로 살아갈 것이다.” 페르시아 대왕의 초청을 거부한 이 철학자는 에페소스에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을 지키는 최고 사제 집안이자 정티 지도자 블로손 또는 몇몇 어떤 사람들에 따르면 헤라콘이라는 사람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장남으로서 최고 지도자이자 최고 사제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자리를 동생에게 양보하고, 평생 세속에 초연한 철학자의 모습으로 살았다. 그는 산속에 들어가 산나물을 캐먹으면서 세속에 대한 관심을 떨쳐버리고 순수하게 철학의 문제에만 몰두했다. 2.철학사에서 최초로 변화를 이야기하며, 변증법적 사고를 하다. 변증법적 사고- 모순을 통해 진리를 찾는 철학방법. 헤라클레이토스는 사물을 지속적 운동과 변화 속에서 파악했다. ‘판다레이!’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흐른다. 그는 우리가 두 번 다시 같은 강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처음에 들어갔던 강물에 다시 들어가도 그 강물은 이미 새로운 물결로 이루어진 것이고, 우리도 처음 들어갈 때와 다르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립과 투쟁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낮과 밤은 서로 대립하지만, 그것은 서로의 투쟁에 의해서 하루를 이룬다. 헤라클레이토스는 ” 투쟁은 공통된 것이며, 투쟁이 정의이며, 모든 것은 투쟁과 필연에 따라서 생겨난다” 라고 주장한다. 이 철학자는 이 대립과 투쟁을 불로 상징화했다. 그래서 그는 ‘불의 철학자’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불은 모든 것을 태워 재로 만드는 불이 아니라, 모든 것을 변화하고 움직이게 하는 힘이자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불로 표상되는 대립은 대립자에 대해 변증법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대립자는 서로를 배척하지만, 서로가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죽음이 없으면 삶도 없고, 삶이 없으면 죽음도 없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병은 건강을 달콤하고 좋은 것으로 만든다. 굶주림은 포만을, 피로는 휴식을 그렇게 만든다.”라고 말하다. 그는 이렇게 대립자들을 통일시켜주면서 대립자 속에는 어떤 공통적인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것을 ‘로고스(logos)’라고 이름을 지었다. 로고스는 공통의 것이고, 만물을 하나로 파악하게 하는 원리이며, 영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3. 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

헤라 클레이토스는 말년에 풀과 거친 야생 식물로 연명하다가 수종증에 걸렸다. 이 수종증은 몸에 물이 차서 퉁퉁 붓는 병인데, 불의 철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 물이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그는 수종증에 걸린 자기 몸을 스스로 치유하기 위한 방법을 발견한다. 그는 노예들을 시켜 자신의 몸에다 소똥을 골고루 바르게 하고 태양을 바라보고 드러 누웠다. 아마 소똥에서 나는 뜨끈뜨끈한 열과 태양열이 몸속의 물을 증발시킬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무지막지한처방이 그를 죽음으로 더 빨리 몰아갔다. 다음 날 그는 세상을 떠났고, 그의 시신은 아고라에 묻혔다고 한다.